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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원 (19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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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해원(1919년 2월 22일 ~ 2020년 2월 8일)은 의친왕 이강과 후궁 수덕당 이희춘 사이에서 태어난 대한제국 황족이다. 2006년 대한제국 황족회에 의해 '문화대한제국 여제'로 추대되었으나, 전주이씨대동종약원 등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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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원 (1919년)
기본 정보
이혜원 사진
1936년 결혼 당시의 이혜원
이름이 해원
한국 제국 이름이진 (李珍)
한국 제국 이름 (한자)李珍
한국 제국 이름 (로마자 표기)I Jin
한국 제국 이름 (매큔-라이샤워 표기)I Ch'in
다른 한국 제국 이름이길운 또는 이원 (李吉雲 또는 李瑗)
다른 한국 제국 이름 (로마자 표기)I Gilun 또는 Yi Won
다른 한국 제국 이름 (매큔-라이샤워 표기)I Kilun 또는 I Won
등록 이름이해원 (李海瑗)
등록 이름 (로마자 표기)I Haewon
등록 이름 (매큔-라이샤워 표기)I Haewŏn
계승이씨 가문 수장 (논쟁 중)
재위 기간2005년 7월 16일 – 2020년 2월 8일
대관식2005년 7월 16일
이전 수장왕세자 이구
다음 수장없음
배우자이승규
자녀이진휴
이진왕
이진주
이진홍
가문전주 이씨 (출생)
용인 이씨 (결혼)
아버지이강
어머니이희춘 (생모)
김수덕 (양모)
출생일1919년 4월 24일
출생지경성부 사동궁, 대한제국
사망일2020년 2월 8일
사망지하남시, 대한민국
호칭
한국어 이름이해원
한자 이름李海瑗
일본어 이름り かいえん (히라가나)
일본어 이름 (가타카나)イ・ヘウォン
직책

2. 생애

이해원은 의친왕과 수덕당 이희춘(壽德堂 李希春) 사이의 딸로 태어났다. 법모는 의친왕비 김숙이다.[7]

경성부 사동궁에서 출생하였고 종로소학교에 입학한 뒤에는 운현궁에서 살았다.[7][9] 1937년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그 해 용인 이씨 이승규(李昇圭)와 결혼하였다.[7] 게이오 대학교 법문학부를 나왔던 남편 이승규는 한국 전쟁 때 납북되었다.[7]

1992년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가 2002년 귀국하였으며,[10] 이후 15년간을 경기도 하남시 단칸방에서 차남 이진왕과 살고 있었으며, 서울 연희동의 땅 17만평을 되찾기 위해 소송 중이었다. 장남 이진휴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택시 기사를 하고 있으며, 삼남 이진홍도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딸 이진주는 미혼으로 강릉에서 살다 사망하였다.[7]

2020년 2월 8일 사망하였고 코로나 기간이라 아들들이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자 장조카인 이준이 상주로 삼일상을 치루었다.[7]

2006년 9월 29일에는 대한제국 황족회(2006년 5월 5일 결성, 9월 29일 대한제국 황실로 개명)가 '''문화대한제국 여제'''(文化大韓帝國 女帝)로 이해원 여사 그녀를 추대하고 대한제국 황실의 복원을 주장하기도 했다.[7]

3. '문화대한제국 여제' 추대

이구의 사망(2005년 7월 16일) 이후, 황실 구성원들은 그의 양자 이원을 이씨 왕가의 차기 당주로 선출하고,[6] 그에게 한국 황사손(황태자)의 칭호를 수여했다. 이는 이구로부터 계승된 칭호였다.[5] 이해원은 조카의 왕위 계승 주장과 임명에 이의를 제기하며 제국의 복원을 선포했다.[6] 2006년 9월 29일 비공개 즉위식이 거행되었고, 이해원은 '대한제국 황후'라는 칭호를 받았다. 그의 이복형제 중 한 명인 이석에 따르면, 다른 왕족들은 이러한 의식을 승인하지 않았다. 이석 자신도 초대를 받았으나, "대한제국 황실 협회" 회원들이 누구인지 몰라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6]

2006년 9월 29일, 대한제국 황족 후손 10여 명으로 구성된 단체인 “대한제국황족회”(2006년 5월 5일 결성, 9월 29일 “대한제국황실”로 개칭)는 전임 당주 이구의 서거를 계기로 황위 계승식을 거행하고, 이해원을 상징적인 여제로 추대했다.[11] 이로써 이해원은 “'''문화대한제국'''[11]”의 “'''여제'''”를 자칭하게 되었다. 이해원은 황실의 대표 전권, 황실 유지 보존 사업권, 차기 당주 지명권 등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11]

남연군 이구의 후손에 따르면, 황위 계승식은 “대한민국에도 황실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11] 대한제국황족회는 대한민국 정부와 해외 왕족 관계자들에게 공식적으로 보고하고, 해외 왕족들과의 교류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11]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에 대해 어떠한 공식적인 입장도 밝히지 않고 묵살했다.

이조 왕족 후손 대부분이 소속된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을 비롯하여, ‘우리황실사랑모임’, ‘대한황실재건회’ 등 많은 왕당파 단체들은 이해원의 추대를 무효로 하고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2019년 기준으로, 이해원 외에 이해원의 동생의 아들로 일반적으로 정통 당주로 여겨지는 이원, 이해원의 동생인 이석이 구황실 당주를 자칭하며, 3명의 황위 계승 청구자가 공존하는 상태였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운영하는 웹사이트 “Korea.net”에서는 황위 계승 청구자의 존재를 2명만 인지하고 있으며(그중 한 명은 이석으로 명시되어 있음)[13]

3. 1. 추대 배경

2005년 7월 16일 이구(李玖)가 사망하자, 황실 구성원들은 이구의 양자인 이원(李源)을 이씨 왕가의 차기 당주로 선출하고, 그에게 한국 황사손(황태자)의 칭호를 수여했다. 그러나 이해원(李海瑗)은 조카의 왕위 계승 주장과 임명에 이의를 제기하며 제국의 복원을 선포했다.

2006년 9월 29일, 대한제국 황족 후손 10여 명으로 구성된 단체인 “대한제국황족회”(2006년 5월 5일 결성, 9월 29일 “대한제국황실”로 개칭)는 전임 당주 이구(李玖)의 서거를 계기로 황위 계승식을 거행하고, 이해원(李海瑗)을 상징적인 여제로 추대했다. 이로써 이해원은 “문화대한제국”의 “여제”를 자칭하게 되었다. 이해원은 황실의 대표 전권, 황실 유지 보존 사업권, 차기 당주 지명권 등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남연군(南延君) 이구(李球)의 후손에 따르면, 황위 계승식은 “대한민국에도 황실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대한제국황족회는 대한민국 정부와 해외 왕족 관계자들에게 공식적으로 보고하고, 해외 왕족들과의 교류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는 이에 대해 어떠한 공식적인 입장도 밝히지 않고 묵살했다.

이조 왕족 후손 대부분이 소속된 전주이씨대동종약원(全州李氏大同宗約院)을 비롯하여, ‘우리황실사랑모임’, ‘대한황실재건회’ 등 많은 왕당파 단체들은 이해원의 추대를 무효로 하고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전주이씨대동종약원 사무총장 이정재는 "황족회가 어떤 단체인지 알 수 없고, 이해원옹주 외에는 황실 관계자가 한 명도 없다.(중략) 대동종약원을 모르는데 무슨 전통성이 있는가"라며 비판했다.

이해원의 이복형제 중 한 명인 이석(李錫)에 따르면, 다른 왕족들은 이러한 의식을 승인하지 않았다. 이석 자신도 초대를 받았으나, "대한제국 황실 협회" 회원들이 누구인지 몰라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2019년 기준으로, 이해원 외에 일반적으로 정통 당주로 여겨지는 이원(李源), 이해원의 동생인 이석(李錫)이 구황실 당주를 자칭하며, 3명의 황위 계승 청구자가 공존하는 상태였다.

3. 2. 계승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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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의 사망(2005년 7월 16일) 이후, 황실 구성원들은 그의 양자 이원을 이씨 왕가의 차기 당주로 선출하고,[6] 그에게 한국 황사손(황태자)의 칭호를 수여했다. 이는 이구로부터 계승된 칭호였다.[5] 이해원은 조카의 왕위 계승 주장과 임명에 이의를 제기하며 제국의 복원을 선포했다.[6] 2006년 9월 29일 비공개 즉위식이 거행되었고, 이해원은 '대한제국 황후'라는 칭호를 받았다. 그의 이복형제 중 한 명인 이석에 따르면, 다른 왕족들은 이러한 의식을 승인하지 않았다. 이석 자신도 초대를 받았으나, "대한제국 황실 협회" 회원들이 누구인지 몰라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6]

2006년 9월 29일, 대한제국 황족 후손 10여 명으로 구성된 단체인 “대한제국황족회”(2006년 5월 5일 결성, 9월 29일 “대한제국황실”로 개칭)는 전임 당주 이구의 서거를 계기로 황위 계승식을 거행하고, 이해원을 상징적인 여제로 추대했다.[11] 이로써 이해원은 “'''문화대한제국'''[11]”의 “'''여제'''”를 자칭하게 되었다. 이해원은 황실의 대표 전권, 황실 유지 보존 사업권, 차기 당주 지명권 등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11]

남연군 이구의 후손에 따르면, 황위 계승식은 “대한민국에도 황실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11] 대한제국황족회는 대한민국 정부와 해외 왕족 관계자들에게 공식적으로 보고하고, 해외 왕족들과의 교류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11]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에 대해 어떠한 공식적인 입장도 밝히지 않고 묵살했다.

이조 왕족 후손 대부분이 소속된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을 비롯하여, ‘우리황실사랑모임’, ‘대한황실재건회’ 등 많은 왕당파 단체들은 이해원의 추대를 무효로 하고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2019년 기준으로, 이해원 외에 이해원의 동생의 아들로 일반적으로 정통 당주로 여겨지는 이원, 이해원의 동생인 이석이 구황실 당주를 자칭하며, 3명의 황위 계승 청구자가 공존하는 상태였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운영하는 웹사이트 “Korea.net”에서는 황위 계승 청구자의 존재를 2명만 인지하고 있으며(그중 한 명은 이석으로 명시되어 있음)[13]

한국에서는 황실을 한국 문화로 보고 부활에 찬성하는 입장도 있지만, 일본의 부상을 허용한 황실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나, 이미 소멸한 황실의 부활 운동은 시대착오적이라는 반대 입장도 많다.

3. 2. 1. 찬성

이해원을 황위 계승자로 올린 황족회의 입장은 두 가지 뿐이다. 첫째, 이해원이 현재 생존한 대한제국 황실 후손들 중에서 최고령이기 때문에 그녀가 황위 계승자가 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둘째, 27대까지 이어진 조선왕조의 임금들이 모두 남성들이었던 것은 임금 사후 계승권 내에 남성들이 충분히 있었기 때문이기에 여성 임금이 없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는 즉, 계승 순위에 여성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여성이 황위 계승자에 오르는 것 또한 오류가 없다는 것이다.

이외에 사단법인 전주이씨대동종약원에서 이구 황세손의 양자로 이원을 지명한 것은 사후의 일이므로 법적 효력이 없기 때문에 이해원의 황위 계승에 장애가 없다는 주장이 있었다.[6] 이구의 사망(2005년 7월 16일) 이후, 황실 구성원들은 그의 양자 이원을 이씨 왕가의 차기 당주로 선출하고,[6] 그에게 한국 황사손(황태자)의 칭호를 수여했다.[5] 이해원은 조카의 왕위 계승 주장과 임명에 이의를 제기하며 제국의 복원을 선포했다.[6] 그의 이복형제 중 한 명인 이석에 따르면, 다른 왕족들은 이러한 의식을 승인하지 않았다고 한다.[6]

한국에서는 황실을 한국 문화로 보고 부활에 찬성하는 입장도 있지만, 일본의 부상을 허용한 황실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나, 이미 소멸한 황실의 부활 운동은 시대착오적이라는 반대 입장도 많다.

3. 2. 2. 반대

2005년 전주이씨대동종약원 상임이사회의 의결에 따라 의친왕의 9남 이갑의 아들인 이원을 이구 황세손의 양자 사후입적하였다고 주장하며 황사손(皇嗣孫) 칭호를 부여하였던 것 등을 근거로, 여황 추대에 대하여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은 물론 우리황실사랑회, 대한황실재건회 등의 황실 관련 민간 단체들이 무효라고 주장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6] 특히 대한제국황족회의 사무총장 이초남은 황손 이우의 자손을 칭하는 등의 행적으로 대동종약원과 상당한 마찰을 빚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대한제국 황족회에 실제 황족은 소속되있지 않아 단체의 대표성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 의친왕의 서녀로서 옹주를 칭하고 효령대군의 후손을 총리대신으로 임명하는 등의 행동도 반대 여론을 낳고 있다.

더욱이 황족회는 '문화 대한제국'(文化大韓帝國)이라는 명칭으로 변경하였고, 2020년 이해원이 사망하자 단체는 구심점을 잃게 되었다.

또한 대한민국에서 황실을 복원하려 하는 것은 민주공화제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비판과, 10~20대의 젊은 찬성론자들이 비슷한 시기인 2006년 당시 방영된 드라마 의 영향으로 황실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었다는 지적도 있었다.[6] 이구의 사망(2005년 7월 16일) 이후, 황실 구성원들은 그의 양자 이원을 이씨 왕가의 차기 당주로 선출하고, 그에게 한국 황사손(황태자)의 칭호를 수여했다. 이는 이구로부터 계승된 칭호였다.[5] 이해원은 조카의 왕위 계승 주장과 임명에 이의를 제기하며 제국의 복원을 선포했다. 2006년 9월 29일 비공개 즉위식이 거행되었고, 이해원은 '대한제국 황후'라는 칭호를 받았다. 그의 이복형제 중 한 명인 이석에 따르면, 다른 왕족들은 이러한 의식을 승인하지 않았다. 이석 자신도 초대를 받았으나, "대한제국 황실 협회" 회원들이 누구인지 몰라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황실을 한국 문화로 보고 부활에 찬성하는 입장도 있지만, 일본의 부상을 허용한 황실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나, 이미 소멸한 황실의 부활 운동은 시대착오적이라는 반대 입장도 많다.

3. 2. 3. 대한민국의 입장

2005년 7월 16일 이구가 사망한 이후, 황실 구성원들은 이원을 이씨 왕가의 차기 당주로 선출하고, 그에게 한국 황사손(황태자)의 칭호를 수여했다.[5] 이는 이구로부터 계승된 칭호였다.[5] 그러나 이해원은 조카의 왕위 계승 주장과 임명에 이의를 제기하며 제국의 복원을 선포했다.[6]

2006년 9월 29일, 이해원은 비공개 즉위식을 거행하고, '대한제국 황후'라는 칭호를 받았다.[6] 그의 이복형제 중 한 명인 이석에 따르면, 다른 왕족들은 이러한 의식을 승인하지 않았다.[6] 이석 자신도 초대를 받았으나, "대한제국 황실 협회" 회원들이 누구인지 몰라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6]

같은 날, 대한제국 황족 후손 10여 명으로 구성된 단체인 "대한제국황족회"(2006년 5월 5일 결성, 9월 29일 "대한제국황실"로 개칭)는 전임 당주 이구의 서거를 계기로 황위 계승식을 거행하고, 이해원을 상징적인 여제로 추대했다.[11] 이로써 이해원은 "'''문화대한제국'''"[11]의 "'''여제'''"를 자칭하게 되었다. 이해원은 황실의 대표 전권, 황실 유지 보존 사업권, 차기 당주 지명권 등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11]

남연군 이구의 후손에 따르면, 황위 계승식은 "대한민국에도 황실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11] 대한제국황족회는 대한민국 정부와 해외 왕족 관계자들에게 공식적으로 보고하고, 해외 왕족들과의 교류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11]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에 대해 어떠한 공식적인 입장도 밝히지 않고 묵살했다.

이조 왕족 후손 대부분이 소속된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을 비롯하여, '우리황실사랑모임', '대한황실재건회' 등 많은 왕당파 단체들은 이해원의 추대를 무효로 하고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2019년 기준으로, 이해원 외에 이해원의 동생의 아들로 일반적으로 정통 당주로 여겨지는 이원, 이해원의 동생인 이석이 구황실 당주를 자칭하며, 3명의 황위 계승 청구자가 공존하는 상태였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운영하는 웹사이트 "Korea.net"에서는 황위 계승 청구자의 존재를 2명만 인지하고 있으며(그중 한 명은 이석으로 명시되어 있음)[13]

4. 가계

이해원(李海瑗)은 의친왕(이강)과 후궁 이희춘 사이에서 태어났다.[7] 김수덕을 양모로 두었다. 남편은 용인 이씨(龍仁 李氏)인 이승규(李昇圭)이다.[7] 이승규의 아버지는 이완영(李完榮)이고, 어머니는 한산 이씨(韓山 李氏) 이희경(李喜慶)이다.[7] 이해원과 이승규 사이에는 아들 이진휴(李鎭烋), 이진왕(李鎭旺), 이진홍(李鎭弘)과 딸 이진주(李鎭珠)가 있다.[7][8] 장남 이진휴는 이애선(李愛仙)과 결혼했고, 차남 이진왕은 박종미(朴鍾美)와 결혼했다. 이진주는 미혼으로 사망했다.[8]

==== 상세 가계도 ====

이해원은 대한제국 고종의 아들인 의친왕 이강의 둘째 딸이다. 그러나 황실계보도인 선원계보기략에 의하면 이해원은 남연군의 종손인 계동궁 이기용에게 양녀로 입적되었다. 의친왕 이강의 딸로서는 황실의 후손으로 외자인 이진이라는 이름을 썼지만 이기용에게 양녀로 법적으로 입적되면서 계동궁의 항렬인 '해'자 돌림을 써서 이해원이 되었다. 따라서 족보를 중시하는 황실의 법도에 따르면 이해원은 계동궁 이기용의 딸이기에 족보대로 따져도 여황제에 등극할 수 없었다. 의친왕 '가문'의 첫째 딸은 미혼으로 의친왕비 김씨의 호적에 올라간 의친왕의 다섯째 딸 이공('이해경'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이다.

대한황실 계보도 선원계보기략


이해원의 남편 이승규는 1983년에 발행된 족보에 따르면 용인 이씨(龍仁 李氏) 출신이다.[7]

  • '''아버지:''' 이강 의친왕(李堈 儀親王) (1877년 3월 30일 – 1955년 8월 16일)
  • '''할아버지:''' 고종황제(高宗) (1852년 9월 8일 – 1919년 1월 21일)
  • '''할머니:''' 귀인 장씨(貴人 張氏) (덕수 장씨)
  • '''어머니:'''
  • '''생모:''' 수덕당 이희춘(修德堂 李熙春) (이강의 5번째 후궁)
  • '''양모:''' 의친왕비 김수덕(儀親王妃 金壽德)
  • '''이복 남동생:''' 이석(李錫) (1941년 8월 3일 출생)
  • '''남편:''' 이승규(李昇圭) (1917년 9월 4일 출생)
  • '''시아버지:''' 이완영(李完榮) (1895 – 1943), 이주상(李胄相)의 외아들.
  • '''시어머니:''' 이희경(李喜慶) (1895년 출생), 한산 이씨 이덕규(李德珪)의 딸.
  • '''자녀:'''
  • '''아들:''' 이진휴(李鎭烋) (1941년 1월 24일 출생) – 이애선(李愛仙)과 결혼.
  • '''아들:''' 이진왕(李鎭旺) (1945년 11월 14일 – 2019년 12월) – 박종미(朴鍾美)와 결혼.
  • '''딸:''' 이진주(李鎭珠) (1947년 9월 11일 – 1994년)[8] – 미혼으로 사망.
  • '''아들:''' 이진홍(李鎭弘) (1949년 7월 24일 출생)

4. 1. 가족 관계

이해원(李海瑗)은 의친왕(이강)과 후궁 이희춘 사이에서 태어났다.[7] 김수덕을 양모로 두었다. 남편은 용인 이씨(龍仁 李氏)인 이승규(李昇圭)이다.[7] 이승규의 아버지는 이완영(李完榮)이고, 어머니는 한산 이씨(韓山 李氏) 이희경(李喜慶)이다.[7] 이해원과 이승규 사이에는 아들 이진휴(李鎭烋), 이진왕(李鎭旺), 이진홍(李鎭弘)과 딸 이진주(李鎭珠)가 있다.[7][8] 장남 이진휴는 이애선(李愛仙)과 결혼했고, 차남 이진왕은 박종미(朴鍾美)와 결혼했다. 이진주는 미혼으로 사망했다.[8]

4. 2. 상세 가계도

이해원은 대한제국 고종의 아들인 의친왕 이강의 둘째 딸이다. 그러나 황실계보도인 선원계보기략에 의하면 이해원은 남연군의 종손인 계동궁 이기용에게 양녀로 입적되었다. 의친왕 이강의 딸로서는 황실의 후손으로 외자인 이진이라는 이름을 썼지만 이기용에게 양녀로 법적으로 입적되면서 계동궁의 항렬인 '해'자 돌림을 써서 이해원이 되었다. 따라서 족보를 중시하는 황실의 법도에 따르면 이해원은 계동궁 이기용의 딸이기에 족보대로 따져도 여황제에 등극할 수 없었다. 의친왕 '가문'의 첫째 딸은 미혼으로 의친왕비 김씨의 호적에 올라간 의친왕의 다섯째 딸 이공('이해경'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이다.

이해원의 남편 이승규는 1983년에 발행된 족보에 따르면 용인 이씨(龍仁 李氏) 출신이다.[7]

  • 아버지: 이강 의친왕(李堈 儀親王) (1877년 3월 30일 – 1955년 8월 16일)
  • 할아버지: 고종황제(高宗) (1852년 9월 8일 – 1919년 1월 21일)
  • 할머니: 귀인 장씨(貴人 張氏) (덕수 장씨)
  • 어머니:
  • 생모: 수덕당 이희춘(修德堂 李熙春) (이강의 5번째 후궁)
  • 양모: 의친왕비 김수덕(儀親王妃 金壽德)
  • 이복 남동생: 이석(李錫) (1941년 8월 3일 출생)
  • 남편: 이승규(李昇圭) (1917년 9월 4일 출생)
  • 시아버지: 이완영(李完榮) (1895 – 1943), 이주상(李胄相)의 외아들.
  • 시어머니: 이희경(李喜慶) (1895년 출생), 한산 이씨 이덕규(李德珪)의 딸.
  • 자녀:
  • 아들: 이진휴(李鎭烋) (1941년 1월 24일 출생) – 이애선(李愛仙)과 결혼.
  • 아들: 이진왕(李鎭旺) (1945년 11월 14일 – 2019년 12월) – 박종미(朴鍾美)와 결혼.
  • 딸: 이진주(李鎭珠) (1947년 9월 11일 – 1994년)[8] – 미혼으로 사망.
  • 아들: 이진홍(李鎭弘) (1949년 7월 24일 출생)

참조

[1] 웹사이트 마지막 황손 이석, '할아버지 고종 황제, 제대로 평가되길' https://www.bbc.com/[...] 2018-11-02
[2] 뉴스 아직 끝나지않은'황실의 추억' http://www.heraldbiz[...] Herald Media 2010-04-06
[3] 뉴스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女皇 추대는 억지 장난" http://www.chosun.co[...] 2006-10-02
[4] 웹사이트 조선황실 마지막 옹주 이해원씨 별세 http://monthly.chosu[...] 2020-02-09
[5] 웹사이트 역대 총재 http://www.rfo.co.kr[...]
[6] 웹사이트 Coronation of Korea's new empress leads to royal family controversy http://koreajoongang[...]
[7] 웹사이트 용인이씨대동보 龍仁李氏大同譜, 6권 https://www.familyse[...]
[8] 뉴스 Coronation of Korea's new empress leads to royal family controversy https://koreajoongan[...] Korea JoongAng Daily 2006-10-22
[9] 서적 朝鮮王公族 ―帝国日本の準皇族 中公新書 2015-03-00
[10] 뉴스 아흔여덟 고종 손녀, 땅 소유권 60억 소송 낸 이유는? https://news.joins.c[...] 2017-06-11
[11] 뉴스 大韓帝国皇室を復活、皇族会が皇位継承式を開催 http://www.wowkorea.[...] 2006-09-29
[12] 뉴스 大韓帝国皇室「家門の復活」 ? https://japanese.joi[...] 2006-09-30
[13] 뉴스 Heir of the last royal family becomes ceramic artist http://www.korea.net[...] 2008-08-16
[14] 문서 전주 이씨 대한제국 황실 직계 족보 1920-02-24
[15] 문서 전주 이씨 대한제국 황실 직계 족보 1920-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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